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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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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5)
2016년 03월 11일 13시 46분  조회:1591  추천:1  작성자: 김장혁



                       5. 밀정을 처단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초저녁에 유격대의 억복 등은 질척질척한 진흙탕 길을 밟으면서 간신히 함흥촌으로 돌아왔다.
       기준은 웃새집에 가서 아버지께 문안을 드린 후 토성안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마루에 올라서자 인삼이 반겨 맞았다.
      “형님, 김 장군이 우리를 보고 용정 부근 성지촌의 허팔기란 개다리를 처단하라고 지시했소. 형님이 함께 가서 허팔기와 마을 정황을 알아보겠소?”
      기준은 두말없이 “그러지. 허팔기란 놈이 나를 알아놔서 불편하지 않을까.” 라고 했다.
뒤이어 그는 무슨 궁리를 하는 인삼에게 툭 찍어 말했다.
“에이, 고 한줌 도 안 되는 놈을 죽이는데 무슨 숱한 사람이 가서 뭘 하겠소. 내 혼자 가서 도끼로 대갈통을 까치우면 다지.”
인삼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한참 궁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 간단할 같지 않소. 지금 일본 놈들은 개다리들이 하나하나 처단되자 보안을 강화했소. 잘 정찰하지 않고 소홀히 건드렸다간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는 꼴이 되고 말 거오.”
기준은 한참 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치였다.
“오, 성지촌과 그리 멀지 않은 물레방아 골에 원삼이가 있지 않소? 그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면 될 게요.”
인삼은 이전에 원삼과 기준이가 호송하던 쌀 수레를 빼앗을 때부터 원삼의 위인을 아는지라 그리하기로 했다.
기준은 이튿날로 원삼을 찾아 떠나갔다. 부상당한 억복을 토성안집에 남겨두고 인삼과 철석이 유격대 대여섯을 데리고 기준을 뒤따라 물레방아골 쪽으로 떠났다.
한편 기준이 물레방아 골로 도착했다.
원삼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기준은 사위를 둘러보다가 리영룡 지주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면바로 뚱뚱한 리영룡이 집 울안에서 나왔다.
“리 주인, 무사합둥?”
리영룡은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낯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떻게 돼 여기까지?”
“원삼을 찾아왔습니다.”
“저 아래 성지촌으로 갔소.”
리영룡은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위를 살폈다.
기준은 너무나도 허황해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아니, 가을걷이를 하지 않고 어디로 간단 말이오?”
리영룡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알 턱이 있소? 사람이 말을 타면 견마를 잡히고 싶어 한다더니 사람의 욕심이 어디 끝이 있소? 간도에 쪽박 차고 오자마자 힘꼴을 쓴다고 밭도 붙이라고 줬더니. 에이, 참, 원, 소작료를 적게 내려고 좀스럽게 논단 말이오. 흥!”
리영룡은 코 방귀를 뀌더니 뒤짐을 짓고 휭 하니 가버렸다.
기준은 뒤에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총이나 있었으면 저 놈 새끼 대갈통부터 박살냈으면. 원, 참.)
기준은 별수 없이 뒷산등성이에 올라갔다. 그때 인삼이네가 셋씩 두 패로 나눠 다가왔다. 그들은 인차 옥수수 밭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기준은 성이 꼭뒤까지 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원삼은 리영룡 지주에게 쫓겨 간 거 같네. 동생, 허팔기보다 저 악질지주 리영룡부터 없애 버리는 게 어떻소?”
인삼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우린 이번에 일본 놈의 개다리 허팔기를 처단해야 하오. 리영룡의 대갈통은 잠시 목에 붙여두었다가 다시 보기요.”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원삼은 리 지주한테 억눌려 사는 게 억울해 항상 유격대에 가고 싶다 했네. 언젠가는 꼭 나와 원삼이 리 지주의 목을 베 버리겠소.”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돌아보면서 결단성 있게 명령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성지촌으로 가기요.”
유격대원들은 기준을 앞세우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등성이를 타고 성지촌 쪽으로 떠났다.
기준이 육도하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걸으면서 보니 조선족 간민들이 올망졸망 지은 초가집들이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산비탈마다 누렇게 번져가는 손바닥만 한 밭들이 올망졸망 널려있어 별유풍경이었다.
(에이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쓸데 있어? 가을에 지주들이 소작료를 다 걷어가고 나면 빈 털털인 걸.)
기준은 농사꾼들이 불쌍해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들은 해질녘에야 성지촌에 이르렀다. 기준은 앞서 나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골목길에 나오는 사람과 물었다.
“이 마을에 금방 이사해온 원삼이네 집이 어느 겐지 모르오?”
그 사람은 기준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당신은 그 집 사람하구 어떻게 되오?” 하고 물었다.
“오, 한 고향 사람이오.”
그러자 그 사람은 산기슭 첫 집을 가리켰다.
“저 집에 있을 게요.”
기준은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마른기침을 하더니 원삼이네 집으로 갔다.
“원삼이 있소?”
등불이 나불거리는 집안에서 대답소리 났다.
“양, 아니, 이게 귀에 익은 목소리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원삼이 달려 나왔다.
“아니, 정말 범이 제 흉을 하면 온다더니 밤에 이게 웬 일이오?”
원삼이가 기뻐 야단쳤다.
기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팔꿈치로 원삼의 옆구리를 툭 쳤다.
“소릴 좀 낮추오! 팔기 듣겠소.”
원삼은 기준의 손을 잡고 황급히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원삼의 처자들은 기준을 알아보고 모두들 인사했다.
원삼이 위방에 올라가 앉자 원삼의 작달막한 아내가 저녁상을 들여왔다.
기준은 체면을 챙길 새 없이 숟가락을 들면서 물었다.
“인삼한테서 들으니 화나서 앓는다더니 어떻소?”
“물레방아골을 떠나니 좀 낫소. 리영룡 지주를 보기만 해도 화 나서 못 견디겠소. 그래 인삼 형님은 막일을 하러 용정으로 갔고 나도 여길 내려왔소. 건데 여기 와서도 허팔기란 놈 새끼를 보면 또 화나군 하오.”
“그래, 그 팔기 새끼 쌀을 유격대에 빼돌렸다고 자넬 물어먹더니 아직도 마을에 있는가?”
기준의 물음에 원삼은 화나서 몸까지 움찔했다.
“에이, 옛말에 악한 놈이면 죄를 만나 일찌감치 썩어진다던데 그 놈 새끼는 눈이 퍼래 살아 있소.”
기준은 허리를 앞으로 굽히더니 원삼한테 귀속 말을 했다.
“요즘 마을에 일본 놈들이나 수상한 놈들이 드나들지 않았소?”
원삼은 엉거주춤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더니 정지에 대고 말했다.
“종호야, 네 좀 나가 살펴라. 누가 오면 기침소릴 높게 내라.”
“예.”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난후 원삼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며칠 전에 수상한 놈들 몇몇이 허팔기 집에 왔었소. 농사꾼들 같지 않습데.”
“아직도 있소?”
“없소.”
“오늘 온 놈은 없소?”
“가만 있자. 자위대 놈이 한 놈 와 있는 거 같소. 술상을 벌렸는지 온 저녁 굴뚝에서 연기 뭉게뭉게 납데.”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허팔기 집이 어느 게요?”
“두 집 건너 앞집이오. 보기 싫다 하니 날마다 눈에 띠우오? 흘끔흘끔 나를 살피기만 하오. 밸 같았음 그놈 새끼를 단매에 때려죽이고 싶소. 에이, 참.”
기준은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삼도 일어났다.
“아니, 형님, 무슨 일이 있소?”
“내 좀 나갔다가 올 일이 있소.”
“무슨 일이오? 이 밤중에? 혹시 내 도울 일이 없소?”
기준은 주춤 멈춰서더니 몸을 돌려 원삼한테 다가서면서 귀속 말로 말했다.
“허팔기 놈을 처단하러 인삼 아우가 왔네.”
“양? 그럼 우리 집에 오라고 하오.”
“아니네. 우린 일을 끝내고 그 길로 돌아가겠네. 괜히 자넬 연루시킬게 없네.”
“허팔기 놈을 내 손으로 없애자 했는데. 에이, 좌우간 속이 시원하겠소. 나도 나가겠소.”
그러자 기준은 원삼의 손을 잡고 말했다.
“동생, 그까지 허팔기 목을 비트는데 자네까지 필요 없네. 모르는 척 하고 집에 있소.”
이때 바깥에서 기침소리 높이 났다.
“누가 온 거 같소.”
원삼의 말에 기준은 “아마 아우가 온 거 같소. 내 나가 봐야겠소.” 하고 말하면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원삼은 기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자기가 위방 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나갔다.
“누구요?”
“쉬-”
기준이가 문을 삐쭉 열고 내다보다가 나갔다.
“아우요.”
기준은 인삼한테 다가가 앞집 쪽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그러자 인삼은 원삼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삼은 뒤따라 마당에 들어선 철석에게 뭐라고 나직이 명령했다. 뒤이어 뒤에선 유격대원들에게 동서남북을 가리키면서 일일이 뭐라고 귀속 말로 명령했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갔다.
인삼은 원삼을 집에 들어가라고 한 후 기준을 미리 뒷산 옥수수 밭에 보냈다. 뒤이어 그는 철석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 둘은 두 집 건너 허팔기 집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을바람에 굴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마구 날려갔다.
인삼이가 위방 문 쪽에 다가갔다. 철석은 정지 문에 다가갔다.
그들은 동시에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구멍 내고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등불이 너불거리는 위방에서 작달막하고 턱이 뾰족한 자와 실팍한 자가 뭐라고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인삼은 작달막한 자가 허팔기고 실팍한 자가 원삼이가 말하던 자위대 놈이라고 짐작했다.
뒤이어 그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인삼이가 위방 안쪽을 손가락질했다.
철석이가 위방 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위방 문을 벌컥 열고 동시에 뛰어 들어갔다.
인삼이가 휘두른 시퍼런 비수에 실팍한 자위대 놈의 목이 썩 뚝 날아났다. 위방과 정지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울렸다. 철석이가 시퍼런 비수를 허팔기 놈의 목에 들이댔다.
“이 일본 놈들 개다리야! 우란 유격대다. 또 일본 놈들에게 고발해 봐라!”
허팔기는 구들바닥에 머리를 쪼아대면서 두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줍소. 나도 조선에서 살 길을 찾아온 조선 사람이요.”
인삼은 비수를 허팔기의 눈앞에 들이대고 호통 쳤다.
“네놈이 일본 놈들의 밀정질을 하면서 무고한 우리 조선 사람과 중국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물어 먹었느냐?! 낱낱이 탄백해라.”
허팔기는 뽀족한 턱을 쳐들고 희미한 등불을 빌어 구척같이 훤칠한 인삼을 쳐다보면서 애걸했다.
“내 일본 놈들이 시킨 걸 다 말하면 살려주겠소?”
“어서 탄백해!”
허팔기는 이번에는 일본 놈들을 팔아 목숨을 구해보려고 늘여놓았다.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사이또 소장놈과 조일파출소의 일본 놈의 소장 그리구 조선에서 온 똘만 경찰은 나를 보구 성지촌에 숨어있으면서 이 지방에 유격대와 내통하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밀고 하라고 했소. 그놈들은 지금이 마을에 숱한 변복한 자위대 놈들을 깔아두고 유격대가 나타나기만 하면 붙잡자고 했소.”
철석은 비수를 턱밑에 들이대면서 따졌다.
“아직도 더 있어. 말해!”
허팔기는 철석의 비수를 손으로 좀 밀면서 마른기침을 꼴딱 넘기더니 말했다.
“저 물레방아 골에서 이사해온 원삼이네 집에 수상한 사람들이 나타나면 즉시 밀고하라고 했소. 똘만 경찰이 그러던데. 전번에 원삼이네와 함께 쌀 수레를 몰던 경칠이란 사람은 조선에서 경찰국을 무너뜨린 죄인 김기준이라면서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밀고하라고 했소. 기준을 붙잡으면 평생 먹을 근심이 없게 상을 준다고 했소.”
이때 바깥에서 왁자지껄 하며 복잡해졌다.
인삼은 철석에게 머리 짓을 했다.
철석이가 비수를 쳐들면서 고함쳤다.
“에잇, 이 일본 개다리 놈아, 네놈은 일제 개다리 본성을 고치지 못해. 인민을 대표해 네놈을 처단한다!”
“아이고, 일본 놈들을 다 팔아 먹었는데도 죽이는가?”
“네놈이 유격대를 물어먹은 피 빚은 용서할 수 없어!”
눈 깜짝할 새에 철석의 비수가 휙 내려가자 허팔기의 가는 목이 썩 뚝 잘려나갔다. 인삼이가 또 한칼을 더 안기자 허팔기의 피범벅이 된 대갈통이 구들바닥에 뚝 떨어져나가 뒹굴었다.
정지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인삼은 즉시 철석과 함께 위방에서 뛰어나와 성지촌 뒷산 옥수수 밭으로 철거했다.
그들은 마른 옥수수이파리들이 가을바람에 춤을 추는 누런 옥수수 밭에 숨어서 성지촌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함흥촌 쪽으로 철거했다.
그때였다.
불시에 옥수수 밭이 우수수 소리 났다.
인삼과 철석이 주위를 살펴보았다.
낯모를 사람들이 어둠을 타 옥수수밭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린 발각됐습니다. 김 대장, 빨리 선바위 쪽으로 달아나시오. 우리 엄호하겠습니다.”
철석은 소리치며 옥수수 밭에서 뒤에 추격해오는 놈들에게 총을 쏘았다.
그때 낫을 들었던 자들이 낫을 버리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쏘아대며 추격했다.
“서라!”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옥수수 밭에서 울렸다.
“삼촌, 빨리 산속으로 달아나시오!”
철석은 기준에게 고함치며 돌아서서 총을 쏘아댔다.
땅! 땅!
귀청을 째는 총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쫓아오던 놈이 가슴을 붙안고 꺼꾸러졌다.
기준은 도끼를 거머쥔 채 옥수수 밭에서 달아났다.
땅!
기준이가 되돌아보았다. 저게 뭐냐? 뒤에서 총을 쏘면서 엄호하며 따라오던 철석이가 다리에 총을 맞고 쩔룩거리었다. 기준은 되돌아가 철석을 옆구리에 껴안고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 놈이 그때라고 쫓아오면서 옥수수 대 사이로 권총을 겨누었다.
“개놈새끼!”
기준은 욕지거리를 하면서 시퍼런 도끼를 뿌렸다. 제일 앞에서 쫓아오던 놈의 어깨에 빙글빙글 날아간 도끼가 툭 박혔다.
“아이쿠!”
비명소리와 함께 그 놈이 쓰러졌다.
땅!
철석이가 뒤따라오던 놈을 쏘아 눕혔다.
땅!
인삼이가 되돌아와 철석을 붙안고 총을 쏘았다.
겁을 집어먹은 놈들은 더 쫓지 못하고 눈먼 총질만 했다. 그 틈을 타 기준은 철석을 제꺽 둘러업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강냉이 밭을 벗어났다. 이윽고 나무숲이 꽉 들어선 수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뒤에서 인삼은 총을 쏘면서 엄호했다.
기준은 가시덤불 속을 헤치고 들어가 철석을 내려놓았다. 그는 피가 질벅한 철석의 허벅다리를 자기 저고리 팔소매를 쭉 찢어내 동여맸다.
“가기요!”
기준은 중얼거리면서 철석을 업고 숨도 돌릴 새 없이 나무숲이 우거진 령 길을 타고 고개를 넘었다.
그날 밤중에 인삼과 기준은 유격대원들과 함께 서로 다리에 피가 질벅한 철석을 바꿔 업으면서 기진맥진해 간신히 토성안집에 들어섰다.
그들을 보고 업복과 유격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철석은 피를 너무 흘린 탓으로 정신을 잃은 채 두 팔을 기준의 어깨 넘어 축 내리 드리고 있었다.
인삼은 억복을 보고 소리쳤다.
“빨리 따뜻한 가마 목에 눕히오.”
철석을 가마 목에 내려놓자 기준은 맥이 지내 땅바닥에 풀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땀벌창이 된 인삼도 가마 목에 풀썩 물앉았다.
억복은 기준을 부축해 일으켜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기준은 위방에 들어가 억복에게 낮에 있은 일을 쭉 이야기해주었다.
뒤이어 인삼은 정지에 내려가 여성유격대원을 보고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이윽고 한 아낙네가 저녁밥상을 들여왔다.
어느덧 낙엽은 우수수 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허팔기가 처단된 사실을 성지촌의 밀정들에게서 보고 받은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와 조일파출소 일본 경찰들은 성지촌에 몰려와 온 마을을 발칵 뒤집었다.
그들은 교활하게 원삼은 건드리지도 않고 다른 마을사람들을 붙잡아다가 허팔기를 죽인 자들의 용모파기를 본적이 있나 심문했다. 그러나 그렇다할만한 아무런 단서도 쥐지 못하고 말았다.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사이또 소장은 조일파출소 소장과 토론하고 암암리에 원삼의 주변을 감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보촌에서 십가장과 특무(밀정)까지 처단된 보고가 올라오자 용정 일본영사관과 통감부 간도파출소는 도가니 속처럼 끓어 번졌다.
사이또 소장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분명 장백산 유격대의 소행이야. 유격대를 소멸하지 않고선 간도를 떠나지 않을 테다!”
그는 숱한 밀정들을 파견해 “소서구”의 “김병완”과 “김기준” 부자를 수사해내라고 부하들을 들볶아댔다.
간도파출소 마당에서 일본 놈의 경찰들과 자위대 놈들이 이발을 사려 물고 떠들썩하는데 사냥개들이 컹 컹 컹 짖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6. 돌연습격
기준은 오후에 상우와 상순을 데리고 잔등에 땀이 흠뻑 젖도록 조이단을 져서 장지주네 집 마당에 내려갔다. 조단을 져 내려가는 그들의 뒤로 거무스름한 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황야의 거무스름한 땅은 기준의 조손 3대가 샛별을 이고 나가서 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땀 동이를 기울여 황무지를 개간한 목숨 줄 같은 땅이었다. 그 피땀이 슴밴 땅에서 난 곡식을 걷어 들이는 그들은 잠시나마 수확의 기쁨에 온몸이 흠씬 젖어 있었다.
해질녘에 기준은 상순만 데리고 함흥촌 토성안집에 내려갔다.
인삼은 기준을 반갑게 맞아들인 후 상순과 상길을 보고 토성 바깥에서 놀면서 망을 보라고 했다.
상길과 상순은 토성바깥의 공지에서 애들과 함께 놀면서 망을 보았다. 그러다가 너무 숨이 차고 목이 말라 토성바깥의 우물가에 가서 드레 박을 자아 올렸다. 그가 샘물을 꼴깍꼴깍 들이켤 때다. 드레박 물에 웬 일본 헌병대 옷차림이 비꼈다.
(아니, 이게?!)
깜짝 놀란 상순은 몸을 홱 돌렸다.
“악!”
가을 독사 같은 일본 헌병대 놈이 시무룩이 웃었다.
토성 안 집안에서는 인삼이네가 한창 성지촌과 원삼의 형편을 두고 대책을 토론하고 있었다.
상순은  돌발사태에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이 두근거렸다.
(이걸 어쩐담?)
곧장 달려가 일본 헌병이 왔다고 하면 놈들의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헌병 놈은 낯선 조선 땅딸보경찰 똘만이랑 서넛을 데리고 토성안집 쪽으로 기웃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보초를 서던 어린 상순은 돌발사태에서도 인삼이가 시켜 준 대로 했다. 그는 제꺽 드레박을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황급히 고함쳤다.
“개 왔습구마!”
“개 왔습구마!”
그 소리를 들은 인삼은 당장 명령했다.
“빨리 피신하오. 나와 성해가 놈들을 대처할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마당으로 나가려고 했다.
억복이 막아 나섰다.
“김 대장이 나가선 안 됩니다. 내가 남겠습니다.”
인삼은 억복을 뒤로 밀어냈다.
“억복이나 철석은 부상당했기에 들키기 쉽소. 집주인이 없으면 놈들이 더 의심할 게요. 빨리 피신하오.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절대 나오지 마오. 이건 명령이오.”
“김 대장!”
억복이가 뻗치고 서서 인삼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없소. 빨리 피신하오.”
억복과 철석 등 10명 유격대원과 기준은 쌀독을 들고 쌀독 밑에 난 동굴로 몽땅 들어갔다.
김인삼은 쌀독을 끌어다 벽 밑에 난 동굴 문을 막아버리고 성해한테 돌아섰다.
그는 문 옆에서 두 손을 맞잡고 어쩔 줄 몰라 서성거리는 성해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제야 성해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마음을 진정하였다.
인삼은 머리를 쳐들고 당당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낯선 땅딸보는 수하들을 데리고 다짜고짜로 상순을 따라 토성안집에 뛰어 들어갔다.
그때 인삼이가 마루에서 내려 상순에게서 드레박의 물을 받아 들면서 낯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일본 헌병놈이 손을 홱 휘저었다.
“수색해!”
낯선 조선족경찰들이 집안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갔다. 그자들은 구두 발로 구들을 마구 밟으면서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한 놈이 쌀독덮개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성해는 머리를 숙이면서 자위대 놈을 흘끔 훔쳐보았다. 인삼은 그녀에게 도리머리 질 했다. 성해는 머리를 들고 바깥을 외면하면서 마음을 억지로 진정했다.
이때 그 자위대 놈이 쌀독덮개마다 열었다가 쾅쾅 닫으면서 빈정거렸다.
“이놈들이 잘 살긴 잘 사는구나. 쌀독마다 쌀이 꼴딱꼴딱 하구먼.”
놈들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땅딸보가 다가와 드레박을 성해에게 건네주는 인삼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인삼은 억울해 땅딸보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들은 무슨 사람들이기에 우리 집을 마구 뒤지는 거요?”
땅딸보는 인삼과 옆에서 뛰노는 상순을 번갈아보면서 부하들에게 두덜거렸다.
“요 새끼 금방 ‘개 왔습구마’고 소리친 바람에 다 달아난 거 같아.”
땅딸보 놈은 상순의 멱살을 틀어쥐어 건뜻 쳐들더니 “왜 ‘개 왔다’고 했어? 그래 우리가 개냐?” 하고 따지고 들었다.
상순은 목이 졸려 얼굴이 발개 두 다리를 바둑거리면서 땅딸보 놈을 쏘아보았다.
상순은 목을 좀 놓자 “드레박을 개(가져)왔다 했는데 어쨌다고 이러오?” 하고 대들었다.
헌병 놈은 뭐라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멍해 땅딸보만 건너다보았다.
“드레박을 개 왔다?”
땅딸보는 드레박을 받아든 성해를 보면서"개왔다.”는 말을 반복해 보아도 어데 흠을 잡을 데 없어 도리머리 질 했다.
뒤이어 그는 인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다.
“당신 인삼인가?”
인삼은 태연자약하게 “옳소? 무슨 일이오?” 하고 물었다.
땅딸보는 자기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수하들은 집안을 눈 빗 질 하면서 경계태세를 취했다.
“당신 들으니 밭이 몇 짐 없다던데 무슨 일로 이렇게 큰 집에 숱한 사람들을 치오? 돈은 어데서 나왔소?”
땅딸보의 돌연적인 물음에 인삼은 땅딸보의 쏘는 듯이 표독한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이 집은 우리 양아버지가 지어준 집이오. 장사를 하다나니 사람도 많이 필요하오. 돈도 좀 벌었는데 그게 무슨 죄오?”
땅딸보는 인삼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들면서 바투 들이댔다.
“무슨 장사를 하는가?”
“소금과 쌀 장사를 하오.”
“그래?”
땅딸보는 헌병 놈한테 다가가더니 인삼을 턱짓하면서 일본말로 쑤군거렸다.
헌병 놈이 뭐라고 떽떽거렸다.
땅딸보는 졸개들에게 “소금과 쌀을 수색해내라.” 하고 고함쳤다.
졸개들이 우르르 흩어져 온 토성 안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인삼은 땅딸보를 따라 나가면서 물었다.
“당신들은 무슨 사람들인데 남의 집을 마구 수색하오?”
땅딸보는 외까풀 눈으로 인삼을 째려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우린 진수해 조일파출소분주소에서 내려온 순사어른들이야. 네놈 집에 수상한 놈들이 드나든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하러 왔어.”
“어느 놈이 생사람을 잡아먹었는가?”
인삼은 중얼거리면서 능청을 부렸다.
이윽고 놈들은 사랑방에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숱한 쌀 마대와 소금마대를 들춰냈다.
땅딸보는 놀란 눈길로 엄청난 쌀과 소금 무지를 둘러보더니 꽥 고함쳤다.
“이 놈을 나포하라!”
놈들은 와닥닥 달려들어 인삼의 양팔을 비틀어 뒤로 재꼈다. 뒤이어 그를 꼼짝 못하게 바 줄로 얼기설기 꽁꽁 묶었다.
이 돌발사태에도 인삼은 태연자약하게 허무맹랑한 웃음을 지었다.
“생사람을 왜 잡는 거요? 장사를 해도 죄오?!”
땅딸보는 외가풀 눈깔이 실눈이 돼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이 놈, 귀신을 속여도 조선 명천의 유명한 경찰 똘만을 속이지 못해. 내 네 놈 토성안집을 몇 해 동안 동산 계수동에 있으면서 감시했는지 아니? 그간 토성 안에서 개미새끼 꿈틀 해도 손금 보듯 해 왔다. 밭을 한 짐도 붙이지 않은 놈이 어데서 이렇게 많은 쌀과 소금이 났니?”
“조선에서 소금을 들여다가 바꾼 쌀이오. 이 나라에 언제부터 소금과 쌀장사를 못한다는 법이 있었소?”
“잔말 말고 간도파출소에 가자.”
뒤이어 땅딸보는 토성 안을 기웃거리더니 인삼에게 물었다.
“거 숱한 놈들이 맨 날 욱실거리더니 다 어데 갔어?”
이때 억복이 사랑채 뒤 토성구석의 동굴구멍의 돌 조각을 빼내고 내다보았다. 서쪽 토성구석 구멍도 살며시 열리더니 철석이가 한쪽 눈으로 이쪽을 내다보았다.
인삼은 도리머리 질 해 그러지 말라고 암시하고 나서 머리를 돌려 땅딸보에게 말했다.
“모두 장사하러 가고 없소.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며칠 후에야 올 게오.”
억복과 철석은 김인삼 대장의 그 말 뜻을 알아듣고 동굴구멍을 막아버리고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헌병 놈은 인삼과 성해를 압송해 진수해 쪽으로 내려갔다.
똘만경찰이 토성 안을 나서자마자 뱁새눈으로 버드나무아래 우물과 드레박을 번갈아 흘끔거리더니 인삼을 불러 세웠다.
“가만! 아까 그 개 왔다던 죄꼬만 새끼는 누군가?”
“김진이란 애오.”
“김진?”
똘만은 한걸음 다가서면서 “소서구는 어데 있소?” 하고 중을 떠보았다.
“여긴 소서구란데 없소?”
“저 서쪽골짜기 이름은 뭐요?”
인삼은 태연자약하게 “천지꽃산 골짜기요.” 하고 나서 씁쓸해했다.
그래도 똘만은 실오리만한 꼬리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저 골짜기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주경칠이란 사람이 사오.”
“주 씨라고? 허참, 소서구의 기준이란 놈은 어데서 대체 살까? 서쪽 골안에 사는 사람은 이씨 아니면 허씨고 박씨가 아니면 주씨군. 흥!”
똘만은 도리머리 질 했다.
“가자!”
몇 발자국 걷다가 똘만은 또 소리쳤다.
“잠간!”
그자는 또 표독스런 뱁새눈을 가슴츠레 뜨고 인삼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아까 드레박을 들구 다니던 김진이라던가 그새끼는 당신 아들인가?”
인삼은 속으로 적이 놀라면서도 태연자약하게 “아니요. 이 마을의 애요.” 하고 대답해버렸다.
“그 놈 새끼 애비 이름이 뭐요?”
“허 쑥떡이요.”
“또 허 씨구먼.”
그 소리에 자위대 놈들이 배때기를 끌어안고 박장대소했다.
“웃긴 뭘 웃어? 그놈새끼 딱 내가 조선에서부터 쫓아온 기준이란 놈처럼 생겼단 말이야. 나이 어려 그렇지 시꺼먼 눈썹이라든가 독살스런 세 귀 눈이라든가 넙죽한 이마가 신통히 기준이란 놈처럼 생겼단 말이야.”
쌀독덮개를 열었다 놨다 하던 자위대 놈이 중얼거렸다.
“그럼 그놈새끼와 애비를 잡아가면 알게 아닙니까? 후회나지 말게.”
그러나 똘만은 인삼의 앞인지라 아닌 보살을 떨었다.
“허 씨라는데도?”
“허 씬지 김 씬지 잡아봐야 알게 아닙니까?”
자위대 놈이 계속 횡설수설하자 똘만은 대답하다 못해 눈치코치 없는 그 허수아비 같은 자를 콱 쏴줬다.
“이놈새끼, 내가 알아서 하지 않을라고 그래? 잔말 말구 이놈들이나 잘 압송해가라. 빼앗기면 봐라. 네놈새끼들 대갈통이 목우에 붙어있는가!”
“옛! 알았습니다!”
뒤이어 그놈은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찬다고 인삼을 쿡 윽박질러 떠밀고서는 “어이쿠, 내 대갈통이 언제 땅바닥에 떨어져 굴지 모르겠다!” 하고 익살을 부리면서 머리를 움츠리더니 목을 슬슬 만지였다.
똘만은 그런 상통이 너무 우스워서 킬킬거리면서 발길로 그자의 엉덩이를 툭 걷어찼다.
"이놈새끼, 주둥이나 까졌지 어느 쪽에 쓰겠니?"
“헌 신짝도 짝이 있다는데 나도 고운 색시 있을 거요.”
“짹짹거리는 참새새끼 같은 거 누가 딸 주겠니?"
이때 한 무리 사내들이 해동 굽인 돌이 쪽에서 앞길을 막아 나섰다.
일본 헌병 놈은 깜짝 놀라 고함쳤다.
“나니까(뭐야)?”
인삼이가 머리를 들어보니 장학산과 그의 아들들인 장충국, 장리국이 달려왔다. 뒤따라 지학사와 그의 가병들은 손에 사냥총까지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헌병과 자위대 놈들은 대적이나 만난 듯이 총을 겨누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지학사네 가병들은 총을 겨누지 않은 채 다가왔다.
똘만은 인적이 없는 산기슭 굽인 돌이에서 겁기라곤 없는 한패의 사내들을 만나자 적이 당황해났다.
“네놈들이 감히 황군의 앞길을 막아? 죽기 싫으면 어서 피해!”
장학사는 웃는 얼굴로 똘만의 앞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면서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장관, 무슨 일로 내 양아들을 잡아가오?”
똘만은 뭐라는지 알아듣지 못해 장학사와 헌병 놈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그때 인삼이가 장학사에게 중국말로 “양아버지, 일 없습니다. 돌아가시오.” 하고 말했다.
똘만은 인삼이가 중국말을 아는 것을 보고 “이자가 뭐랬는가?” 하고 물었다.
인삼은 똘만에게 “이분은 내 양아버진데 무슨 일로 내 양아들을 잡아가나 물었소.” 하고 통역해주었다.
똘만은 어깨가 으쓱해가지고 지껄였다.
“너네 양아들이 유격대라는 밀고가 들어와서 잡아간다.”
그 말을 인삼이가 통역해주자 장학사는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내 양아들은 장사꾼이지 유격대 아니오. 제발 내 양아들을 놔주오.”
그 말을 듣자 똘만은 펄쩍 뛰었다.
“이놈은 농사도 짓지 않는데 그 큰 집에 숱한 일군을 집에 두고 쌀과 소금이 창고에 산더미 같네. 우리가 가니까 겁나 한 놈도 없이 몽땅 달아났어. 분명 유격대들이야. 유격대에 쌀을 날라 간 거야!”
그 말에 장학산은 노기가 충천해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면서 펄쩍 뛰었다.
“야, 이 놈들아, 네놈들이 환장했냐? 그 토성안집은 내 지어준 게고 쌀도 내가 줬어. 집이 크고 쌀이 많은 게 무슨 죄란 말이냐?”
심지어 지학사가 손을 홱 휘젓자 가병들은 사냥총을 자위대 놈들에게 겨누었다. 자위대 놈들도 장총을 내리워 가병들에게 겨눴다.
일본 헌병 놈은 이 돌발사태에 눈깔이 휘 동그래졌다.
“뭐야? 유격댄가? 감히 우리 황군에게 총을 겨눠?”
인삼은 일본 말을 알아듣는지라 장학산을 말리였다.
“양아버지, 성내지 마십시오. 괜히 진짜 유격대로 오해받겠습니다. 이제 내 파출소에 가서 똑똑히 시비를 하면 놔 줄겁니다.”
인삼은 머리를 돌려 헌병 놈에게 일본 말로 말했다.
“오해하지 말게나. 저분들은 내 양아버지네 친척들의 가병이오. 나를 놓아주지 않으면 싸움을 면치 못할 거요.”
이때 산등성이에서 또 한패의 사람들이 괭이랑 도끼랑 들고 내려왔다. 어떤 사내들의 손에는 시퍼런 식칼이 번뜩였고 어떤 사내들의 손에는 사냥총이 들려있었다.
헌병은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것을 보고 똘만을 불러 뭐라고 쑤군거렸다.
똘만이가 인삼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네 양아버진 여기 토호열신에 대지주니까 좀 봐주는 거네. 당신의 처를 놓아줄게. 그러나 당신만은 파출소에 가야겠네. 좀 알아볼게 있소.”
장학산은 더부룩한 수염을 흩날리며 짙은 눈썹을 곤두세우면서 인삼에게 물었다.
“요 땅딸보 놈 새끼 뭐라느냐?”
“성해를 놔 보내겠답니다. 나보고 조일파출소에 가서 알아볼 게 있답니다.”
“개소릴 친다. 안 돼! 널 꼭 잡아가야 돼!”
장학산은 두덜거리면서 인삼의 손을 결박한 바줄을 풀려고 손을 댔다.
헌병 놈이 군도자루를 잡고 눈을 부라렸다.
“네놈이 감히? 미쳤어?”
똘만도 권총을 빼들고 두리번거렸다.
장학산이 꽥 고함치자 산등성이와 골짜기에서 숱한 사냥군들이 일떠나 일제히 총을 이쪽에 겨누었다. 그들은 장학산의 딸 장미련이 일러서 찾아온 부근의 지주들과 가병들이였다. 그 속에는 제지주랑 위지주랑 조지주랑 지학사의 가병들도 있었다.
인삼이가 두루 살펴보니 놀랍게도 억복이랑 철선이랑 유격대들도 총을 잡고 마른 나무숲 속에 엎디어 이쪽에 총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 일촉즉발의 시각에 인삼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렸다.
“양쪽에서 모두 총을 내리오!”
그는 한어와 일어로 말했다.
“내가 파출소에 가서 이 양반들과 시비를 똑똑히 하고 돌아 올 겁니다. 일본 황군은 죄 없는 무고한 나를 어쩌지 않을 것입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일본 헌병은 세 가지 말로 유창하게 말하는 인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학산은 억울해 똘만의 코에 대고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네놈들이 내 양아들을 털끝 하나 다쳐만 봐라. 간도파출소구 조일파출소구 박살내겠어. 네놈들의 대갈통도 몽땅 미친개 대갈처럼 까버리겠다!”
지학사도 뾰족한 턱을 쳐들고 을러멨다.
“쬐꼬만 일본 놈의 개다리 놈들이 감히 우리 양조카를 건드려? 까딱 했다간 개처럼 목을 달아매 죽일 줄 알아!”
장학산은 인삼한테 다가가 두 손으로 와락 끌어안더니 “무사히 갔다가 오게나.”라고 말하고는 돌아서면서 손을 홱 저었다.
“조카 댁을 데리고 돌아가자!”
지학사는 똘만에게 침을 퉤 뱉고 가병들을 데리고 돌아섰다. 산등성이에 서있던 중국 지주들도 도끼와 사냥총을 휘둘러보이고는 산등성이 뒤로 사라졌다.
그제야 헌병 놈은 군도자루에서 손을 떼면서 하얀 수갑을 벗어 낯에 송골송골 돋은 땀방울을 닦았다.
이윽고 그는 다시 위엄을 찾은 듯이 돌아가는 지학사와 장학산의 등 뒤에 대고 손질 발질 해대면서 꽥꽥 고함쳤다.
“이 골짜기에 반일불온분자들이 무리승냥이들보다 더 많구나. 어디다 대고 사냥총을 겨눠? 그까지 사냥총으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총과 대포, 탱크, 비행기를 당할 거 같아!”
뒤이어 그 놈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서 손을 홱 저었다.
“끌고 가!”
인삼은 결박당한 채 가슴을 쭉 뻗치고 자위대 놈들에게 떠밀리어 진수해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는 원시림의 마른 풀과 나무들이 싸늘한 가을바람에 쏴쏴 무섭게 소리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7. 항일투사
      똘만과 헌병은 조일파출소에서 인삼을 형틀에 달아매고 고문하기 시작했다. 그 놈들은 인삼이 확실히 유격대의 큰 인물이라는 단서를 잡기만 하면 용정 간도파출소로 이송할 예산이었다.
자위대 놈과 헌병 놈이 형틀 옆에 악마처럼 딱 붙어 서있었다.
헌병 놈과 똘만은 사전에 소장 놈에게서 포치 받은 대로 먼저 혹독한 매질부터 시작했다. 헌병 놈이 채찍을 들어 인삼의 가슴과 잔등 엉덩이를 짱, 짱 후려쳤다. 남루한 옷이 째지더니 살갗이 벗겨지고 피 줄 뱀이 쭉쭉 갔다.
똘만은 인삼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깨 고소해 입귀에 간사한 미소를 흘리었다.
한참 후 인삼은 머리를 맥없이 툭 떨어뜨렸다.
헌병 놈이 손을 척 들었다.
“그만!”
똘만은 자위대 놈을 보고 물을 퍼 치게 했다.
온 몸에 찬 물을 맞은 인삼이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겨우 눈을 뜨고 희미하게나마 앞에 떡 앉아 있는 저승사자 같은 헌병과 똘만을 노려보았다.
“양아비를 믿고 또 우쭐거려 봐라. 모가지를 썩 뚝 잘라 버릴 테야!”
인삼은 피와 물방울이 줄줄 흘러 떨어지는 얼굴을 겨우 쳐들고 똘만을 쏘아보면서 맞아터진 입귀를 실룩거렸다.
“당신은 누구요? 왜 무고한 사람을 이다지도 못 살게 구오?”
“내 이름 들으면 깜짝 놀라지 말라. 난 명천에서두 소문난 경찰 똘만이야. 으흐흐흐. 알만해?”
인삼은 머리를 천천히 들어 똥똥한 땅딸보를 기억해 두려는 듯이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똘만은 득의양양해 인삼을 심문했다.
“당신은 유격대 두목이라는 거 시인하는가?”
“우겨대? 듣다 첫소리오?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데 당신들이야 말로 우겨댔지. 흥!”
"이놈? 귀구멍이 막혔어? 무슨 우겨대야? 넌유격댄가 말이야!"
인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격대? 난 장사를 하다 보니 유격대라는 거 들어본 적도 없소. 유격대라는 거 뭐 하는 거요?”
똘만은 뱁새눈을 흘기며 인삼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이놈이 더 맞아야 실토정하겠어? 우린 다 알고 있어.”
인삼은 시치미를 땄다.
“다 알면 물을 게 뭐요? 난 유격대라는 걸 모르오.”
똘만은 사무 상을 꽝 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놈을 뼈대 부러지게 매우 쳐라!”
자위대 놈이 채찍을 휘둘러 짱, 짱 칠 때었다.
똘만은 벌떡 일어나면서 씽 달려가 방망이 같은 몽둥이를 잡더니 인삼의 잔등과 다리를 꽝꽝 패댔다.
한참 후 인삼은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더니 이로 입술을 깨물고 까무러쳤다.
똘만은 인삼의 턱을 쳐들고 중얼거렸다.
“이 악질 빨갱이 놈아, 그래도 아닌 보살 할 텐가?”
아무리 물을 퍼 쳐도 인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똘만은 헌병 놈을 돌아보면서 서툰 일본 말로 “이 놈이 죽지 않았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제야 일본 헌병 놈은 일어나더니 인삼에게 다가와 손을 목에 대고 맥박을 짚어보는가 하면 코에 손을 대 보는 것이었다.
“때리지 말게! 이 미끼가 죽으면 큰 고기를 낚으려는 용정의 사이또 소장님에게 할 말이 없네.”
똘만은 헌병에게 대가리를 조아렸다.
“하이(옛)”
한참 후 인삼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머리를 스르르 드는 것이었다.
“말해! 넌 유격대지?”
인삼은 도리머리 질 했다.
“백번 물어봐도 그, 그 대답이오. 난 모르오.”
똘만이 악이 나 인삼의 귀 쌈을 짱 갈겼다.
“잠간!”
그때 헌병 놈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었다. 헌병 놈이 심문하려고 하자 통역이 들어왔다.
“필요 없어. 이 놈은 일본 말을 아주 잘해.”
헌병 놈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내저으면서 나가라고 했다. 뒤이어 그는 인삼에게 다가와 빈정거렸다.
“긴상(김군), 우린 당신을 다 알고 있네. 당신은 함경도 길주 태생이지. 우린 아나따(당신이) 대일본제국의 와세다대학까지 나왔다는 걸 다 아네. 어쩜 우리 일본제국에서 배양한 아까운 인재가 이렇게 산골짜기에서 유격대란 나쁜 길에 들어섰소까? 참말로 아깝소다. 이해되지 않아.”
인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흥!” 하고 냉소했다.
헌병 놈은 똘만을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가서 뭐라고 귀속 말로 쑤군거렸다.
뒤이어 헌병 놈은 간사하게 웃으면서 인삼에게 다가와 형틀에 처맨 양팔의 바 줄을 손수 풀어주었다.
“에이, 유격대 고위 장관을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인삼은 바 줄에 묶이었던 손목을 손으로 슬슬 만지더니 코 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흥! 생사람을 잡는 데는 이름이 있구먼.”
똘만은 인삼에게 걸상까지 들어다 주고 앉으라고 손짓 하고 나서 횡설수설 잔뜩 늘여 놓았다.
“인삼이, 일찌감치 탄백하게나. 우린 자넬 잘 알고 있네. 자넨 전번에도 수하 놈들을 시켜 쌀을 장백산 유격대에 가져다줬네. 우리 조일파출소의 특무는 지게를 지고 그 놈들의 뒤를 밟아 장백산 원시림에까지 접근하였네. 헌데 가석하게도 우리 특무는 영월구 부근에서 유격대에 암살당했네. 어떤가? 우린 자네들의 행동을 면밀히 감시해왔네.”
인삼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무고한 사람을 건너짚지 마오. 난 듣다 첫소리요. 우리야 장사꾼인 게 조선에서 소금을 가져다가 여기 쌀을 사고 여기 쌀을 조선에 내다 팔아 웃돈을 벌뿐이오.”
똘만은 피씩 웃었다.
“우린 알아. 네놈들이 조선의 소금을 들여다 간도 중국인들과 조선인들한테 팔아 돈을 번다는 걸. 문제는 소금을 팔아 번 돈으로 쌀을 사서 장백산 원시림의 유격대에 보냈다는 거야. 창고에 산더미를 이룬 쌀 마대가 어디로 갔어? 그게 문제란 말이야.”
(이놈들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럴 수 없다. 이 놈들은 건너짚기를 하는 거다.)
인삼은 머리를 천천히 들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심통한 소리를 하는구먼.”
이때 고문실 철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키꺽다리 놈이 가재수염을 쓱 문지르며 허리를 굽히면서 문안에 들어섰다.
“잠간!”
그 놈은 들어서자마자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었다. 헌병 놈과 똘만은 차렷 하고 군례를 붙였다.
“사이또 소장님, 친히 오셨습니까?”
(사이또 소장?)
인삼은 머리를 들어 사이또 소장이란 놈을 쳐다보았다. 까만 군관 모자, 번들거리는 까만 채양 밑의 짙은 눈썹, 살인마의 음흉한 눈길, 삐죽한 코 밑의 팔자형가재수염이 퍽 인상 깊었다.
사이또 소장은 살인마의 섬뜩한 표정을 감추고 억지로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김군, 난 당신 같은 인재를 흠상하네. 난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소장이네. 명천군 상우남면에는 김병완과 그의 아들 김기준이 대일본제국의 우시장 경찰국과 숱한 다리를 무너뜨렸고 대일본제국의 자위대장에게 괭이를 휘두른 특대 죄를 범한 범죄자일세. 똘만 경찰은 그놈들의 가족을 추격해 이미 모든 걸 손금 보듯이 장악하였네. 당신이 탄백하지 않아도 토성안집에 대해서도 낱낱이 알고 있네. 당신이 진 죄로 말하면 천번만번 총살하구 릉지처참 해도 성차지 않네.”
인삼은 태연자약하게 앉은 채로 코웃음 쳤다.
“흥!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사이또 소장은 인삼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다가와 손까지 잡으며 될수록 아주 화기애애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김군, 당신은 얻기 힘든 아까운 인재요. 어쩜 빨갱이들의 더러운 물을 먹어 이 지경이 됐어? 사냥총이나 든 유격대가 그래 비행기와 탱크, 대포로 무장한 우리 대일본제국의 백만 관동군을 대적할 거 같은가? 건 닭 알로 바위 돌을 치는 격이야! 아니, 썩은 닭 알로 엄청나게 우뚝 솟은 후지산을 치는 격이지.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당신은 우리 대일본제국을 알만큼 다 알 거야. 명지한 선택을 하게나. 시간 줄게. 잘 생각해보게나.”
인삼은 머리를 들고 떳떳이 일본말로 말했다.
“고려할 게 없어. 난 장사꾼이오. 죽이겠으면 어서 죽여라.”
한참 숨 막힐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똘만과 헌병 놈 그리고 자위대 놈들도 몽땅 사이또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였다. 사이또는 호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뭐라고 쓱쓱 써내려갔다.
이윽고 사이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지껄였다.
“요로씨이(좋아). 김군, 우리가 잘못하였네. 우리 대일본제국의 양민을 몰라봐서 미안하네. 이렇게 합세. 자네가 맹세서에 서명만 하면 되네. 자, 여기에 서명하게나.”
인삼이가 사이또 소장이 내민 누런 종이 장을 받아 보니 일어로 삶은 소대가리 웃을 지경으로 이렇게 썼던 것이다.

충성맹세서
나는 쌀과 소금을 팔아먹는 대일본제국의 장사군 양민이다. 이후에 나는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며 유격대와 절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며 돕지도 않을 것을 맹세한다.
성명: XXX . 소화 9년 10월 30일.
 
인삼은 코웃음 치며 그 종이 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나서 버럭 고함쳤다.
“이따위 짓거리를 하지 말라. 난 돈이나 버는 장사꾼이지 아무런 일에도 삐치지 않으려고 하네.”
순간 사이또의 낯 색이 하얗게 질리었다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인차 냉정을 되찾으면서 태연자약해졌다.
그는 인삼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쏘아보더니 입귀로 냉소했다.
“김 군, 애들처럼 성내긴. 쳇.”
그자는 뒤짐을 짓고 고문실을 왔다갔다 거닐더니 이쪽으로 홱 몸을 돌렸다.
“당신 양아빈지 뭔지 하는 자들이 다시 우리 헌병과 자위대 앞길을 막아나서는 날엔 몰살시킬 테야. 허나 자네가 양아버지를 설복하여 부근의 지주들이 무장을 들고 총 뿌리를 유격대에 돌리게 하게나. 만약 그렇게만 당신이 도와준다면 우리 용정 간도영사관에 말해 간도파출소 요원으로 써주겠네.”
사이또는 인삼의 표정을 한동안 살폈다.
그러나 인삼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앉은 채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쓰거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사이또는 속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단방에 인삼의 머리를 박살내고 싶었다. 허나 인차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억지로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성을 내리눌렀다.
“어떤가? 날 돕겠는가? 쌀장사하기보다 나을 거네.”
인삼은 한참 궁리하는척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양아버지 장학산과 양아버지 고모사촌동생 지학사와 가병들은 일본제국을 반대해 앞길을 막은 게 아니네. 그들은 양아들인 나를 웬 강도들이나 토비들이 붙잡아간다고 그런 거지. 이후에 난 그들이 대일본제국의 앞길을 막거나 항거하지 않도록 말하겠네.”
사이또 소장놈은 붉으락푸르락 하던 얼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검은 구름의 그림자가 가뭇없이 사라지더니 가재수염까지 떨릴 지경으로 싱글벙글했다.
“좋아, 참 좋아. 진작 이렇게 나와야지. 우리 대일본제국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네. 우릴 도와 일하면 일한만큼 돈과 쌀이 많이많이 주겠네. 양옥도 주고 미인도 주겠네. 당신은 장사꾼이니까 주산알을 잘 튕길 거야.”
인삼은 자리에서 일어까지 나면서 다짐했다.
“알았네. 이후에 소장께서 많이 도와주게나.”
사이또는 분주소 소장과 헌병 그리고 똘만을 데리고 고문실에서 나갔다.
이윽고 졸개들이 들어와 인삼을 고문실에서 끌고 나가더니 분주소 바깥으로 놔주었다.
똘만이가 분주소에서 나오더니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왔다.
“우리 사이또 소장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놔주는 거네. 다신 우리 눈에 항일유격대로 보이지 말게 놀게나. 근거 없이 무고한 당신을 혹독하게 고문해서 미안하오. 후에 유격대 놈들이 얼씬거리면 우리한테 기별하게나. 소금 장사나 쌀장사를 하기보다 나을 거네. 유격대 한 놈을 불어 우리가 잡으면 쌀 한수레나 소금 둬 마대 주지. 어떤가? 할 만한 장사지?”
인삼은 똥똥한 똘만을 흘끔 건너다보면서 코웃음 쳤다.
“거 정말 할 만한 장사군. 자넨 그런 사람장사에 꽤나 상을 많이 탔겠구먼.”
땅딸보는 인삼의 말에 흥이 도도해 떠벌였다.
“그래, 간도에 와서 김병완과 김기준만 잡으면 난 살고 날판인데. 자네 좀 도와주게. 그럼 우린 양옥도 있고 미인도 가지겠는데 말이야. 흐흐흐.”
인삼은 정색해서 똘만의 손까지 잡아 흔들었다.
“그럽세. 우리 손잡고 사람장사를 해 보지. 난 돈벌이가 된다면 무슨 짓이나 다 하겠네.”
똘만은 똥똥한 몸뚱이를 뒤로 번져 누울 상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좋아, 결국 자넨 나와 한 배에 타구 말았구먼. 하하하. 한바탕 잘 해 보세나.”
인삼은 똘만과 한참 웃고 떠들다가 갈라져 함흥촌으로 떠나갔다.
분주소안에서 싸이또 소장은 조일파출소 소장 그리고 헌병은 비틀거리며 대문에서 멀어져가는 인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거저 볼 놈이 아니야. 거 태연자약한 걸 봐라. 어떤 놈인가? 아니야. 아주 훈련받은 놈이야."
이때 똘만이가 뛰어 들어왔다.
“소장님, 저 놈을 어떻게 붙잡아왔는데 놔 보냅니까?”
사이또 소장은 똘만의 말을 통역을 통해 들으며 가재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한마디한마디 똑똑히 말했다.
“내가 왜 그 놈에게 속은 척 하겠는가? 큰 그물을 쳐서 큰 고기를 잡자는 거야.”
똘만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우시장의 끼무라 국장이 항상 그 말을 하였습니다. 병완과 기준 부자를 미끼로 유격대를 잡으려고 하였습죠. 그러나 결과 그물만 치고 미꾸라지도 잡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저 놈을 죽이기야 쉽지. 그러나 저렇게 엄청 큰 미끼 아니고서야 장백산기슭 유격대를 낚을 수 있겠는가? 응?”
파출소 소장과 똘만 그리고 자위대 놈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사이또 소장의 눈치를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헌병 놈만이 감히 이렇게 의문을 들고 나왔다.
“인삼이란 놈을 잡아올 때 함흥촌과 패용천산 부근의 숱한 지주들이 가병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 앞길을 막았습니다. 몽땅 반일불온분자무리들입디다. 몽땅 소탕해버립시다.”
사이또 소장은 손사래를 쳤다.
“안 돼! 인삼을 놓아준 것도 그놈들과 관계 돼. 인삼을 놓아주지 않는 날엔 그놈들이 몽땅 유격대편에 설게 아닌가? 오합지졸 같은 그 놈들을 죽이자면 식은 죽 먹기지. 허나 우린 이 부근 지주 놈들을 몽땅 우리 대일본제국 편으로 끌어와야 하네. 알만한가?”
“예~ 알았습니다.”
똘만은 입을 헤벌리고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놈들은 사이또 소장의 넓은 정치 흉금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이또 소장은 똘만에게 “전번에 함흥촌 서쪽 골안에 있다던 놈들이 병완과 기준이 옳은가 정탐해보았는가?”
“예.”
똘만은 제꺽 들은 대로 말했다.
“그런데 함흥촌에 온 놈들은 몽땅 함흥부근에서 이주한 조선 이민들이고 김인삼한테 물으니까 함흥촌 서쪽의 산골짜기 이름은 천지꽃산 골짜기라고 합디다. 천지꽃산 골짜기를 소서구가 아닌가 하여 수하들을 보내 탐문해보았는데 확실히 천지꽃산이라거나 서쪽 골안이라고 하더랍니다. 그 골 안에 사는 농사군들을 알아보니 주현경과 김대동, 김경칠이란 이주민이 소작 농사를 짓고 있더랍니다. 주현경이나 김대동은 모두 함경북도 회령에서 온 게 분명하고 김경칠이란 사람은 함흥 부근에서 왔더랍니다. 그 천지꽃산 골짜기 안에는 병완이나 기준의 그림자두 보이지 않습디다.”
“음-”
사이또 소장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인차 독살스런 눈을 치떴다.
“아니야, 병완과 기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어쩜 수하들에게 시켜 탐문했는가? 생각해 보게. 내가 김기준이거나 병완이라면 자네 수하들 앞에서 ‘내가 병완이요. 내가 김기준이요. 어서 잡아가오.’ 이러겠는가?”
똘만은 숙였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아차, 그놈새끼 딱 기준을 빼 닮았던데. 혹시 그 놈의 아들새끼 아닐까?”
“누가?”
사이또는 똘만의 입을 노려보며 다그쳐 물었다.
“오늘 함흥촌에 갔을 때 신통히 기준이를 닮은 새끼를 발견했습니다. 짙은 눈썹과 독살스런 세 귀 눈이 신통히도 기준과 같습디다.”
통역 리달송의 통역을 듣자 사이또 소장은 가재수염을 슬슬 쓸다가 손을 멈췄다.
“그때 그 놈을 잡아 족쳐야지. 쯧쯧.”
“이름을 물어보니까 김진이라고 합디다. 그래서 놔뒀습니다.”
진수해분주소의 조선족통역은 어망간에 “김진? 그럼 함흥촌의 김진을 그럽니까?” 하고 똘만에게 조선말로 물어보았다.
“양. 자네 아는가?”
“아오. 함흥촌의 김진은 이제 열대여섯 살 밖에 안 되지?”
“그렇소.”
순간 똘만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준의 아들인가?”
통역은 일본말로 먼저 말했다.
“아니오. 그는 김경칠의 아들이오.”
똘만은 도리머리를 가로흔들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지난해 봄에 김진이 해동분주소에 지학사란 지주와 송사를 걸어 이긴 일이 있소. 김진의 아버지 김경칠이가 글쎄 지학사가 휘두르는 괭이에 찍혀 갈비뼈 세대나 부러졌소. 해동분주소 지학구소장은 누구겠소? 지학사의 사촌동생이오. 그런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지학구 소장한테 가서 그의 지학사를 소송했단 말이오. 지 소장은 증거가 없다고 처리해주지 않았소. 그런데 김진은 기어이 패랑천촌의 송 씨라는 사람을 증인으로 끌구 와서 송사에서 이겼소. 치료비까지 40원이나 받아갔소.”
“그래? 그 놈 새끼! 독살스런 눈길을 봐도 헐치 않은 놈이겠더라. 우리 갔을 때도 드레박을 들고 토성안집에 달려들어가서 ‘개 왔다’고 해서 유격대 놈들이 다 달아난 게 아닐까? 우리 가는 걸 보고 ‘개가 왔다’고 알린 게 아니고 뭐요?”
“그럼 얼른 그 놈을 잡아들여야지.”
사이또 소장의 말에 통역은 도리머리를 가로흔들었다.
“내 보건대 그 놈이 기준의 아들이라면 감히 우리 분주소 부근에 얼씬거리기나 했겠습니까? 병완과 기준이가 제 새끼를 여기에 보내겠습니까? 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 듯이 말이야.”
그 말에 사이또 소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똘만도 덩달아 머리를 끄덕였다.
사이또 소장은 똘만과 소장을 돌아보면서 위엄 있게 말했다.
“지금 기준을 닮았다는 김진이란 애보다도 우선 유격대 우두머리 혐의가 있는 함흥촌의 김인삼과 그 머슴이란 자들의 뒤를 파보아야 하네.”
똘만은 난감해했다.
“유격대가 분명한데 뭘 망설입니까? 함흥촌 부근 반일불온분자들을 몽땅 쓸어버립시다.”
“인삼은 훈련을 받은 우두머릴 거야. 지게꾼은 영월구 부근 마을 십가장에게 토성안집에서 장백산 원시림까지 간 키꺽다리랑 땅딸보랑 분명 유격대 숙영지로 들어갔다고 했다오. 십가장집의 여편네가 정지에서 들었다오.”
“토성안집의 놈들을 일망타진합시다.”
“아니야. 인삼을 미끼로 장백산 원시림속의 유격대 숙영지를 알아내야 하네. 나가서 그 놈들의 동만 근거지를 탐지해 동만과 북만, 남만 항일유격대를 일망타진하게 관동군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네. 그전에 우린 절대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지 말아야 하네.”
똘만과 소장은 머리를 진수해분주소 소장과 똘만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연신 찬탄했다.
“소장님, 정말 고명합니다.”
“참 고명합니다.”
사이또 소장은 어깨가 으쓱해 진수해분주소 소장과 똘만을 데리고 소장 실에 들어가 한식경이나 쑤군거렸다.
그때마다 분주소 소장과 똘만은 “예~ 참 묘수입니다.” “거 참 좋습니다.” “옛, 알았습니다!” 하고 감탄소리를 냈다.
진수해분주소와 토성 하나를 사이둔 토성안집의 기생집의 종군위안부들이 “해해해.” “호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거리고 있었다.
사이또 소장은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며 분주소를 나섰다.
눈치를 챈 분주소 소장이 사이또 소장을 안내해 아래쪽 토성 안 일본군위안소로 늑대처럼 스적스적 다가갔다.
     똘만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언감 생색을 내지 못하고 아래 배를 끌어안더니 바지멀춤을 싸쥐고 날 살려줍시사 하고 부랴부랴 변소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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